기후 위기는 세상의 종말이 아닌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다
우리가 이해하는 자연은 큰 틀에서는 한결같다. 조금 더 더운 여름이 있고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 있기도 하지만 덥고 추운 계절은 비교적 규칙적으로 반복된다. 밝고 어둡고 덥고 추워지는 주기는 천체의 영향이지만 덥고 추운 정도와 비, 바람, 눈의 정도가 일정하지 않은 건 지구적인 문제다. 자연이라고 다 같은 자연이 아니다. 천체적인 움직임은 많이 규칙적이지만 지구적인 현상은 그렇지 않다. 짧은 주기로 반복되던 게 긴 주기로 바뀔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불편하게 느끼고 더 나아가 두려움도 느끼게 된다. 지금이 그렇다.
20년 전쯤 나온 회의적 환경론자the skeptical environmentalist라는 책이 있다. 그린피쓰에서 일을 했던 저자가 쓴 건데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는 과장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지금의 여름은 내가 어렸을 때의 여름보다 덥다. 오래 전 여름의 낮도 덥긴 더웠지만 밤에 더워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기억은 없다. 겨울의 한강은 예사로 얼었었다. 위 책 저자의 주장은 우리가 경험하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관찰의 기간을 달리 하면 현상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
5000여년 전 시작된 인더스 계곡 하라파의 도시 문명은 커다란 하천 수로를 따라 1000년 넘게 번성했지만 사람들이 도시를 버리고 떠나면서 쇠락해 결국 사라졌다. 고기후학자들이 이 지역의 과거 기후를 분석한 결과, 약 4100년 전부터 여름 몬순이 급속히 줄어들어 무려 200년 동안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한겨레 2023. 2. 28
기후는 저렇게 수백 년의 주기로 바뀔 수도 있다. 저 가물던 200년 동안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저 가물어서 고통스러웠을 뿐이겠지만 변화의 정점에서 변곡을 몸소 겪었던 사람들은 가뭄의 고통은 비록 덜했을지언정 세상이 망해간다는 공포에 시달렸을 거다. 우리가 과학의 힘을 빌어 관찰과 인식의 범위를 확장한다면 지구는 큰 틀에서도 변화무쌍해 왔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다.
조선말인 1900년대 초 집계된 평균수명은 36세였다.
– 전국매일신문 2021. 9. 6.
수십 년 전만 해도 지금의 눈으로 보면 디스토피아 그 자체다. 전쟁, 범죄, 기근, 질병이 창궐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기후의 변화는 그저 근심거리의 주제가 바뀐 것일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살아 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여태 종교가 있고 철학이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