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된 의미를 갖는 radical의 뜻 – 근본적인, 급진적인, 극단적인

영어 형용사 radical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단어다. 많이는 쓰이는데 서로 반대인 거처럼 보이는 두 개의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단어를 이해하기에 앞서 일반적인 영한사전들에 나와 있는 의미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옥스퍼드 영한사전에 보면 ‘근본적인’과 ‘급진적인’이라 나와 있다. radical을 ‘근본적fundamental‘이라고 이해하는 건 맞지만 急進的이라 하는 거엔 문제가 있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進 때문에 마치 progressive와 같거나 비슷하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표준국어대사전은 ‘급진적’이라는 형용사에 대한 설명에서 progress라는 뜻만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발전뿐만 아니라 ‘변화’가 급하게 이루어지는 것에도 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radical을 ‘급진적’이라고 번역하면 직관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 얽매이게 된다.

이스라엘에는 하레디라는 꼴통들이 있다. 구약의 가르침을 따르며 현대의 공동체와 어울리지 못한 채 충돌하는 집단이다. 흔히 유태교 근본주의자들이라 한다. 이 사람들을 표현할 때 흔히 radical이라 하지만 이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아니다. 오히려 뒤로 돌아가려는 무리이므로 이들을 ‘급진적’이라 하는 건 선뜻 와닿지 않는다. radical은 ‘급진적’보다는 ‘극단적’이라 이해하는 게 더 좋다.

1. Favoring fundamental change, or change at the root cause of a matter.
3. Pertaining to the basic or intrinsic nature of something.
wiktionary

이 단어의 어원은 root다. 하지만 어원적 의미는 위의 풀이처럼 뿌리째 바꾼다는 뜻이 아니라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의미다.

Inherited from Middle English radical, from Latin rādīcālis (“of or pertaining to the root, having roots, radical”).
– ibid.

근본이라는 걸 곰곰이 생각해 보면 radical이라는 단어를 형이상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은 변하고 우리의 삶도 그에 따른다. 근본이라는 건 지금의 가치가 아니기 쉽다. 근본적이려 하는 건 역설적으로 현재를 송두리째 바꾸려 하는 거와 마찬가지다. 규범이란 항구를 떠난 배와 같다. 출항 전 배는 목적지를 갖지만 일단 망망대해에 들어서면 바다와 선장의 의지에 따라 목적지 아닌 어딘가에 다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곳이 애당초 가려 했던 곳보다 반드시 더 나쁜 곳은 아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