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제 변경보다는 당내 민주주의가 문제의 본질

선거구의 크기는 문제의 본질이 아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소선거구제를 중대형선거구제로 바꾸려 하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이긴 하지만 당장 급한 문제는 아니고 무엇보다 저 안에는 국회의원들의 음모가 숨어 있다. 바로 의원들 수를 늘리려는 계산이다.***

조그만 선거구에서 한 명만 뽑나 큰 선거구에서 두 명을 뽑나 어차피 대부분은 국민의힘 아니면 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들이게 된다. 조그만 정당의 후보자들이 당선될 가능성이 지금보다는 커지겠지만 그 정도는 극적이지 않을 거다. 두 개의 정당들이 국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느냐 여러 당들이 나누어 차지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정당들의 수가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수준이다.

문제는 당내 민주주의

나경원이 국민의힘의 대표가 되겠다고 해서 시끄러웠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표들이 누군지 모를 거다. 미국 사람들도 잘 모른다. 미국에서 정당의 대표가 누구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당에서 중요한 문제들이 민주적으로 결정되면 당 대표는 법률행위를 위한 대표일 뿐 특별히 할 일은 없다. 선출을 할 때 우리나라에서처럼 소란을 겪을 일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당의 중요한 일들이 민주적으로 결정되는 경우는 드물고 주로 영향력 있는 몇몇에 의해 좌우된다. 그 영향력이란 구체적으로는 공천권이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대표나 공천을 담당하는 기구에서 누구를 공천했다는 뉴스를 본 사람은 없을 거다.

소수에 의해 결정되는 공직 선거 후보자

전두환 정부에 맞서 싸우다 죽은 박종철이라는 서울대학교 학생이 있었다. 그는 고문을 당하여 죽어 가면서도 동지 박종운에 대한 정보를 넘기지 않았다. 나중에 이 박종운이라는 사람은 전두환 정부를 계승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선거에 나왔다.* 선거에 나온 사람을 유권자가 뽑는 거보다 중요한 건 선거에 나오는 사람을 어떻게 결정하느냐 하는 거다. 지역에서 출마할 사람은 지역의 당원들이 뽑으면 되고 비례대표로 나올 사람들은 전국의 당원들이 결정하면 된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후보를 내지 않는다. 예외적으로만 경선을 시킨다. 당원들이 지역에서 오래 헌신한 인물을 민주적으로 뽑았다면 박종운 같은 사람이 한나라당의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올 수는 없었을 거다. 그나마 정의당에서는 당내 민주주의가 저들 정당에서보다는 잘 이뤄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당원 아닌 사람들에게도 비례대표 후보 선출권을 줘서 당내 민주주의를 해치고 있다.

정치 수준은 공동체 의식 수준의 평균

2020년 3월 국회는, 정당이 비례대표를 정할 때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을 공직선거법에 추가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이 조항을 없앴다.** 문제 조직이 자발적으로 정화해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럴 능력이 있다면 애당초 나쁜 길로 들어서지도 않는다. 개인이건 공동체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외부의 힘이 작용해야 한다. 정당에서는 당원들의 판단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원이 될 수 있고 예외적으로 제한되지만 당원이 되어 정당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적다. 사욕에 취한 사람들이 꽂아 넣은 후보들에게 표를 주면서도 문제 의식을 갖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다는 게 우리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다. 당비라고 해 봐야 정의당은 2만 원이지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천 원이다.

* https://www.khan.co.kr/article/200208231820591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048264?sid=110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202385?sid=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