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라는 협소한 구분으로는 복잡다단한 공동체의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의 연방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 엎은 걸 두고 많은 언론들은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이 그리 결정했다고 한다. 보수保守란 지킨다는 뜻이다. 현재 상태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보수적인 거고 지금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아 바꾸고 싶어 하면 이들을 보수적이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보수의 반대를 진보라 한다.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공화당 성향을 consevative라고 하며 민주당 성향을 liberal하다고 한다. 후자를 두고 progressive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영한사전들에서 liberal을 찾아보면 ‘자유민주적인’이라 나온다. 그렇다면 공화당 사람들은 구속적이고 독재적인가? 영한사전들의 이런 번역들은 틀리다. 윅셔너리를 보면 이 단어를 free하거나 democratic하다고 설명하지 않으며 generous와 open이라 한다. 변화에 수용적이라는 뜻이다. 한자어 보수나 영어 형용사인 conservative에 대한 반대말로 과연 적당하다. 현재에 머무르려 하는 거에 반대는 변하고 달라지려 하는 거다. 그게 꼭 나아가는 거여야 할 건 아니다.
로 대 웨이드 판례에 따라 미국은 수십 년의 긴 세월 동안 임신한 여자가 낙태하는 걸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라 여기고 살았다. 그렇다면 이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게 보수적인 거고 바꾸고자 하면 그게 리버럴한 거다. 지금 총기에 대한 접근이 너무 쉬워서 자동소총을 이용한 집단 살인 사건들이 잦다며 이걸 바꿔 보자고 하면 그게 보수적이지 않은 거고 그냥 이대로 총을 사용하도록 하는 게 그래도 좋다고 하면 그게 conservative한 거다. 그렇다면 현재의 총기 정책을 지지하고 최근까지의 낙태 정책에는 반대하는 공화당은 보수적인 건가 아닌가?
개인과 집단의 다양한 의견들을 보수, 반보수, 자유민주, 개방적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저렇게 부조리하고 단순한 인식과 이해다. 충분히 복잡다단한 세상사를 한두 개의 형용사로 표현할 수는 없다. 굳이 따지자면 그저 당파적인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