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예술 그리고 학문

학문은 실생활에 바로 필요한 걸 연구의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우리 삶에 직접적인 것들은 기술 연구의 대상이다. 병이나 상처로부터 우리 몸을 고치는 연구의 이름이 의학이긴 하지만 애당초 이건 의술이었다. 지금 의과대학에서 가르치는 것들도 엄밀하게는 의학과 의술로 나뉘어져 있다. 우리 몸에 당장 유용한 것들은 아니지만 apply가 가능한 기초 연구들도 이루어지고 있다.​

의술과 마찬가지로 대학교에 반도체학과를 만든다고 이게 학문인 건 아니다. 이건 생활에 바로 쓰이는 거기 때문이다. 어떠한 필요를 느끼고 이걸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기술이다. 그건 학문이 아니다. 학문은 필요가 모호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학문이라는 행위의 결과는 예정되어 있지 않다. 이런 조각들을 모아 구체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 건 사업가나 기술자의 역할이다.​

그런데 문제를 다 풀고 이론을 만들고 난 뒤 다른 이론과 잘 어울리는가를 판단해보면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때가 있다.
허준이 수학자, 매일경제 2021-5-7

그런 면에서 학문은 예술과 같이 구체적으로는 무용하나 유용함의 근본이 되고 예술과는 또 다른 형이상학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이들을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고 모두 일컬어 art(s)라 한다. 모든 무용한 것들이 아름답지는 않으나 무용하며 아름다운 것들은 실로 놀라운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