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거는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2017년 쏠포드 시티의 구장을 새로 여는 자리에서 알릭스 퍼거슨이 축사를 했다. 오래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같이 있었던 선수들이 시간이 흘러 지금은 쏠포드 시티의 높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들을 칭찬하며 유나이티드가 경기 막판에 얼마나 많은 점수를 냈는지 떠올렸다. 이들은 절대 굴복give in하지 않았는데 이 또한 능력quality이라 했다.

축구는 점수차가 크지 않게 끝나는 경우가 흔해 종료 직전에도 전세가 쉽게 뒤바꿀 수 있는 스포츠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당연히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고 있는 경기에서 끝까지 포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설령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해서 더 치명적인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냥 지던 경기를 뒤집지 못하고 진 거뿐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모두 지고 있는 축구와 같진 않다.

한 해에 50번 정도 경기를 하는 프로 축구 선수라면 실패하고 연습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충분히 반복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기울여 한 해에 한 번 시험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그 결과에 대한 충격이 지던 경기를 한 번 뒤집지 못한 축구 선수의 그것에 비할 게 아니다.

미국 행정부의 국무장관은 부통령 다음으로 서열이 3위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했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피아노 영재라서 열다섯 살에 대학교 입학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난 학생들을 보며 꿈을 접는다. 카네기 홀은 커녕 노드스트롬에서나 연주하게 될 거 같다는 절망에 그녀는 글보다 먼저 배운 악보를 버리고 공부를 시작했다.

의미 있는 가치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결과에는 우연이 작용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 납득할 수 있는 과정을 충분히 쌓아 가면 납득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마땅히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포기하는 건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비록 실패로 인한 충격의 정도는 다양하지만 온 재산을 털어 넣고 거기에다 빚까지 더해 도박을 하는 수준으로 무모한 시도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는 실패했다고 삶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포기를 나쁘다 여기지 않으면 과정에 더 충실할 수 있다. 설령 그 결과가 실패와 포기라 하더라도 이는 끝이 아닌 절대적 시작이다.

we shall not cease from exploration and the end of all our exploring will be to arrive where we started and know the place for the first time.
little gidding, t.s. eliot

지향을 멈추지 않는 한 방황은 계속될 것인 바 비록 출발한 자리로 다시 돌아와 있다 해도 새로운 출발은 예전의 그것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