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깨달음, 해탈, 열반의 차이
bodhi, 菩提, 覚, 道, enlightenment를 깨달음이라고 번역한다. vimokkha, liberation을 해탈이라 번역한다. nibbāna는 열반으로 번역한다. 니까야가 이들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개념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니까야 자체가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질 않아서 흩어져 있는 내용들을 모아서 봐야 한다.
깨달음, 해탈, 열반은 각각 여러 단계들로 구성된다.
그 나무 아래에서 나는 처음으로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디가 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3.34.
나는 앗삿타 나무 아래에서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다.
디가 니까야, 마하빠다나 숫따 1.8.
부처는 두 번 깨달았다.
그리고 해탈하였다는 자각이 일어나며 깨닫게 됩니다.
디가 니까야, 사만나팔라 숫따 2.97.
해탈은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거다. 4선정에 이르면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된다는 걸 알게 된다.
반대되는 법들로부터 잘 벗어난다는 뜻이며 대상을 즐기는 것을 잘 벗어난다는 뜻이다.
디가 니까야, 주석(장부주석서 인용), 각묵 스님
해탈에는 여러 종류들이 있다. 그 내용들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모두 옮기지는 않는다.
인식의 영역과 인식하지 않는 영역을 모두 초월하여 인식과 느낌이 모두 멈춰진 경지에 이르러 머물면 그는 8단계의 해탈에 이른 것이다.
디가 니까야, 마하니다나 숫따 35.
아난다야, 중이 팔해탈의 순서대로, 역순으로, 양쪽 순서 모두로 해탈에 들고, 이들 해탈에 들기도 하고 해탈에서 나오기도 하며, 원하는 만큼 머물러 있을 수도 있고, 초월적 지식을 통하여 지금 여기에서 오염의 소멸과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에 이르렀다면 그를 양면의 해탈에 이르렀다 한다.
같은 경 36.
열반은 불교 수행의 최종 목적이다. 불어서 끈다는 뜻으로 중국 사람들은 涅槃이라 음차했다. 영어권 사람들은 번역하지 않고 산스끄리뜨 발음을 알파베트로 표기한 nirvana 그대로 쓴다.
건강은 가장 큰 선물이고 만족은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믿음직스러운 친구는 최고의 사람이며 열반은 최상의 행복입니다.
쿳다까 니까야, 담마빠다 204.
뭔가를 남긴 열반과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열반이 있다.
여래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열반의 요소dhatu, 界, element를 얻게 되면 대지가 몸서리치고 흔들리고 거칠게 지진이 일어난다.
디가 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3.20.
유여열반은 ‘받은 것이 남아 있는 열반’이라는 뜻이며, 아라한들의 경우 번뇌는 완전히 멸진되었지만 그의 수명이 남아 있는 한 과거의 취착의 산물인 오온은 아직 잔류해 있기 때문에 유여열반이라 한다.
디가 니까야, 주석, 각묵 스님
오온도 남기지 않은 걸 무여열반빠리닙바나라 하며 중국 사람들은 般涅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