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람들이 부풀린 곽시쌍부의 원문

槨示雙趺 덧관 곽, 보일 시, 둘 쌍, 책상다리 부

부처는 자기가 죽으면 리넨과 솜을 500겹으로 싼 뒤 쇠로 만든 통 안에 기름을 채우고 그 안에 담그라 했다. 종이로만 천 겹을 싸도 그 무게와 크기가 어마어마할 텐데 하물며 솜 500겹에 천 500겹으로 시신을 싼다는 자체가 구라다. 인도는 구라의 나라다.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오래전에는 관을 두 겹으로 하는 풍습이 있었던 모양인데 이런 경우 바깥의 관을 槨이라 했다 한다. 아마도 부처가 말한 철통을 중국 사람들이 곽이라 번역한 거 같다. 염도 뉘여서 한 게 아니라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에 나오는 거처럼 가부좌를 한 채로 돌돌 쌌는지 철통을 뚫고 가부좌한 다리를 드러내 보였다는 얘기다. 물론 다 뻥이다. 원문은 이렇다.

그는 한쪽 어깨에 가사를 걸치고 합장을 한 뒤 장작더미를 세 번 돌고 세존의 발이 드러나게 했다.
디가 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 6.22.

깟사빠 즉 마하가섭이 스승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장면이다. 이 단순한 묘사가 다다. 그런데 주석서부터 윤색이 시작되어 중국으로 넘어가서는 이상한 환타지가 되었다.

… 이렇게 결심하는 마음과 더불어 500겹의 천을 둘로 열어 제치고 마치 먹구름 사이에서 보름달이 나타나듯이 두 발이 나왔다.”
디가 니까야, 주석 318(주석서 인용), 각묵 스님

위 주석서에는 황금통을 뚫고 장작 더미를 헤치고 발이 드러났다는 묘사도 있다. 이 주석서라는 게 부처가 죽은 약 1,000년 뒤 써진 거다. 열과 성을 다하여 결집하고 전승한 니까야도 이 기간에 변질되고 있는데 무슨 자료를 근거로 붓다고사는 저리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어 저런 묘사를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