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허물은 몰랐던 부처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3
들보는 한옥을 지을 때 칸 위에 얹는 커다란 나무 빔이다. 영어 성서에는 plank널빤지나 log통나무로 번역되어 있다.
부처는 비난 받아 마땅한 스승들을 세 종류로 나눴다. 첫째는 열반에 이르지 못한 스승이 제자를 두는데 제자들은 그 스승을 제대로 따르지도 않는 경우다. 둘째는 설령 제자들이 스승을 잘 따른다 해도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스승이다. 가르칠 건덕지도 별로 없는데 제자들이 따르기만 하면 그 또한 탈이다. 특별할 거 없는 내용이다. 중요한 건 세 번째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그의 가르침은 외면당한다.
디가 니까야, 로힛차 숫따 18.
비록 수행의 끝을 본 스승이라 해도 제자들이 그를 따르지 않으면 그 또한 나쁜 스승이라는 말씀이다. 이는 헌 족쇄를 끊고 새 족쇄를 차는 것과 같다 했다. 제 아무리 해탈을 했다 해도 다른 사람을 특히 그를 따르겠다고 온 제자들조차 감화시키지 못한다면 이는 집착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내게는 한 무리의 제자들이 있는데 그 수는 1,250명이며 이들은 모두 아라한이다.
같은 책, 마하빠다나 숫따 1.10.
부처에게는 위의 제자들 말고도 제자들이 더 있었다. 모든 제자들과 구별하기 위해 한 무리라 특정했다. 이는 신통치 않은 제자들도 따로 있었다는 말이다.
디가 니까야의 마하빠리닙바나는 부처가 죽은 뒤의 장례를 기록하고 있다. 부처의 제자 아닌 사람들 다른 문하의 수행자들 심지어 신들까지 여럿이 모여 그 열반을 칭송하는데 부처의 제자 하나가 깽판을 놓는다.
그가 늘상 이것은 옳은 일이다, 저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하는 통에 여간 성가셨던 게 아니오.
6.20.
디가 니까야가 기록하는 부처의 제자들 가운데 수밧다라는 이름의 제자들이 둘 나온다. 하나는 그의 마지막 제자이고 다른 하나는 더 나이가 많은 제자이다. 후자가 바로 문제의 제자였다.
그는 울고 있는 同門들에게 울지 말라며 스승이 죽어 차라리 잘 됐다고 했다. 그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었다는 망발을 했다.
율장 등에 의하면 마하깟사빠 존자는 늦깎이 수밧다가 한 이 말을 기억하고, 법과 율을 서둘러 결집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정법이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하여, 결집을 주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디가 니까야, 주석 316~317, 각묵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