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까야를 공부하면 불교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나
예수의 가르침은 공관 복음이 전한다. 신약의 다른 券들은 예수가 죽은 뒤 나중 사람들이 쓴 거다. 예수의 가르침 자체는 아니고 변질했다.
부처의 가르침은 니까야가 전한다. 한자로 기록한 많은 경전들도 변질했다.
종교에는 세계관이 있어서 철학 규범과 다르다. 약 2천 년 전의 세계관에는 거짓들이 많다. 예수가 죽은 뒤 신약을 쓴 사람들과 니까야를 접한 중국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랬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을 수정하여 더 보편적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나중에 수정한 거라고 원래의 가르침과 달라 낮게 볼 건 아니다. 오히려 더 높은 의식을 구현하고 있다.
니까야를 공부하기 전에는 大乘이라는 이름조차 싫었다. 부처의 가르침을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한자로 된 경전들을 읽는 게 더 편하니까 대충 공부한다고 생각했다.
공관 복음만 공부해서는 기독교를 이해할 수 없듯이 니까야만 공부해서는 불교를 이해할 수 없다.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관 복음을 반드시 공부해야 하지만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 니까야를 공부해야 할 필요는 없다. 싯닷타 고따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까야를 공부해야 하지만 그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예수와 부처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2천 년 넘게 그 가르침이 남아 있으니 대단한 거라 여길 필요도 없다. 연금술도 1,500년 그 생명을 유지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