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채로 마음을 챙기는 것 – sati
니까야에 많이 나오는 sati라는 단어는 흔히 우리가 마음 챙김이라 번역하고 영어로는 mindfulness로 옮긴다. 형용사 sato로도 나온다.
마하빠리닙바나 숫따에 비빳사나가 설명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도 사띠가 나온다. 부처는 마음을 챙긴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설명하며 아래와 같이 말했다.
마음을 다해 분명하게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의식을 두고 세상에 대한 갈망과 조바심을 떨쳐낸 채로 몸을 몸이라 응시하고 이와 같이 느낌을 느낌이라 응시하고 마음을 마음이라 응시하고 법을 법이라 응시하며 머물면 그는 마음 챙기는 것을 아는 것이다.
2.12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번역들이 제각각이다. 몸으로 몸을 응시한다거나 몸 안에서 몸을 응시한다는 등의 번역들이 있지만 나는 대상을 대상 자체로 본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법에 대한 번역에서는 특히 영어 번역자들이 우왕좌왕한다. 모리스 월쉬는 mind-objects라 했고 wikipitaka에는 mental objects로 되어 있고 나팃사로 빅쿠는 mental qualities로 번역했는데 나는 이들 번역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원문은 dhammānupassī라서 우리가 불교 용어로 흔히 쓰는 법이 맞다. 정확하게는 본다는 뜻의 ānupassī가 더해진 거라 각묵 스님의 번역처럼 法隨觀이라 하면 된다. 隨는 따른다는 의미로서 본다는 행위가 적극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위의 구절은 현대의 명상이나 의식의 초월을 훈련하는 방법과는 다르다. 이들은 떨쳐 낸다는 생각 자체가 ego를 강화하므로 판단 자체를 할 생각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하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기만 하라 한다. 이와 달리 부처는 역시 보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이에 더해 주도적인 의식의 반복을 강조하여 이에 대한 사실적 결과로서의 초월적 지식과 지혜를 말한다. 최근의 주류 수행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휴식의 개념이 강하며 더 나아가 마약을 대체하는 수단 즉 황홀경을 느끼는 방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는 니까야에 나오는 비빳사나라는 이름은 공유하지만 부처의 가르침과는 많이 다르다.
부처는 자등명법등명으로도 유명한 마지막 설법에서도 위의 가르침을 반복한다. 부처 가르침의 요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