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 트레이딩과 파울루 벤투 감독의 전술

야구에 비해 축구는 금융 상품 매매와 더 비슷하다. 끊임 없이 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비슷한 패턴의 공격과 방어가 이어진다. 간혹 이질적인 패턴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90분 넘는 경기 시간 동안 잠깐에 그칠 뿐 선수들은 무료해 보일 정도로 반복적인 움직임을 계속한다. 반면에 야구는 어느 순간 여기가 승부처다 싶은 정적인 때를 맞게 된다. 축구에 비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단계가 비교적 잘 갖춰진다.

하나의 현상이라도 관찰의 범위를 달리하면 멀리서 볼 땐 희극이었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비극인 거처럼 그 현상에 대한 이해도 달라진다. 기분 좋게 마신 개울물도 멀리 상류로 시선을 옮기면 누군가 발을 씻은 더러운 물일 수 있다. 금융 상품의 가격 변동은 길게 보면 비교적 논리적인 설명을 배경으로 큰 흐름과 주기를 보이지만 관찰의 시간을 좁힐수록 무작위성이 강해진다. 그래서 데이 트레이딩을 업으로 하는 나는 축구 경기를 보며 내가 하는 일을 자주 떠올린다. 그런 면에서 파울루 베투 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의 말은 데이 트레이더로서 곱씹어 볼 만하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이 ‘단조로운 전술’ 지적에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벤투 감독이 말했다더군요. ‘상대 전술이나 선수 구성에 맞춰 포메이션을 손쉽게 바꾸는 한국 지도자들을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 확실한 내 것이 없으니 상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아닌가’라고요.
중앙일보 2022. 3. 27.

늘 그렇듯 많은 사람들은 그의 전술에 비판적이었고 의문을 품었지만 시간이 충분히 지난 지금 우리는 그가 옳았다는 걸 안다.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상대를 대적하는 방법은 같이 좇아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한 번만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내 자리를 지키고 섰는 거다. 당연히 그런 모습은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고 무료해 보이며 뜻하지 않은 상황에 방비되어 있지 않은 거처럼 보인다.

랜덤한 움직임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은 커다란 그물눈의 그물을 드리우고 자리를 지키는 거 말고는 없다. 이것도 저것도 다 잡으려 눈을 촘촘하게 하면 내가 그물을 놓치던가 그물이 찢어지던가 둘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