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무아
부처 이전의 인도 철학은 아뜨만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다. 윤회 역시 그랬는데 아뜨만은 이어지는 여러 삶에서 그 주체를 특정하는 실체다. 소로 살다 죽은 뒤 사람으로 태어나면 이 사람이 전에 그 소였다고 특정할 수 있는 고유한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만든 개념이다. 흔히 참나라고 번역한다.
부처는 참나를 부정했다. 지나치게 관념적이기만 해서 있든 없든 우리 삶에 특별한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는 부처 가르침의 중요한 특징이다. 부처를 팔고 다니면서 참나를 찾으라는 사람들은 사이비니 주의한다.
아난다야, 빅쿠가 자아를 느낌이라 여기지 않거나, 느껴지는 것이라 여기지도 않거나, 느껴지는 것이면서 느끼는 것이라 여기지도 않으면 그는 이 세상에 더이상 얽매인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디가 니까야, 마하니다나 숫따 32
이어서 부처는 생명이 다하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열반에 이르면 초월적 지식abhiññā을 얻어 저런 견해들을 넘어선다고 했다.
아빈냐를 중국 사람들은 神通이라 번역했다. 빠알리-영어 사전에는 초월적인 지식이라고 나와 있다. 지혜가 지식보다 우월한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부처는 보편적인 인식의 범위를 초월한 무언가를 알고 있는지 아닌지를 중요하게 판단했다. 중국 사람들이 반야라고 번역한 지혜paññā는 대승 불교의 특징이다.
무아 즉 아뜨만이 없다고 한다면 윤회 속에서 어떻게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나 의문스러울 수 있다. 이에 대한 부처의 가르침은 다른 포스트에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