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들 – 재산, 관계, 고통

갤럽gallup이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미국의 통계학자 조지 갤럽이 만들었는데 온갖 것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 조사하고 통계적 의미를 분석한다. 이 회사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여러 주제들을 조사하는 갤럽 월드 폴world poll이라는 연구가 있다. 그 가운데 각 나라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행복한 정도를 조사한 게 있는데 이거만 특화하여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라는 걸 낸다.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한 정도는 범죄율이나 자살률 같은 객관적 값을 공동체별로 비교하여 순위를 매길 수 있지만 갤럽은 여론조사회사답게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직접 얼마나 행복하게 느끼냐고 묻고 그에 대한 답을 통계적으로 분석한다.

올해 나온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137개 나라들 가운데 57위를 차지했다. 우리 공동체가 얼마나 편하고 안전하고 맛있는 먹을거리들도 많은지 선전하는 동영상들이 유튜브에 많은 걸 생각해 보면 충격적인 순위다. 이 결과는 아래 여섯 개 항목들의 결과에 따라 계산되었다.

부패Perceptions of corruption 42위
관대함Generosity 91위
자유Freedom to make life choices 108위
건강Healthy life expectancy 5위
사회적 버팀목Social support 78위
경제력GDP per capita 25위

우리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은 재산과 건강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실제로 이들이 우리 삶의 가치를 극적으로 높이는 건 아니라는 게 쉽게 확인된다. 재산과 건강은 삶의 고통을 상당한 부분 제거할 수는 있지만 삶에 적극적 가치를 그다지 부여하지는 않는다. 다른 공동체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 공동체는 상대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모질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사는 경향이 강하며 각자도생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맑은 공기로 숨쉴 수 있는 날을 세는 게 그렇지 않은 날을 세는 거보다 쉬운 환경에서 기대 수명이 저렇게 높다는 건 의외다.

참고로 세계은행이 제공하는 최근 1인당 국가총생산 순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40위이지만 순위를 매기는 대상 국가들이 위의 통계와 서로 다르다. 세계은행의 조사 대상국들 수가 더 많다.

Positive memory retrieval generates pleasant feelings that can counteract negative affective states and improve mood. However, not all positive memories are created equal. Our most treasured memories are likely experiences we shared with other people (e.g., birthday party) rather than something we did alone (e.g., receiving good grades).
The social value of positive autobiographical memory retrieval, Speer, Megan E. Delgado, Mauricio R.

위 논문은 지금 기분이 꿀꿀할 때 과거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고통에서 벗어나기 쉽다는 내용을 밝히고 있다. 이런 효과는 혼자 경험한 좋은 기억들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좋았던 경험을 떠올릴 때 특히 좋다고 한다. 재산이 많고 건강한 사람이 큰 고통 없이 살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재산이 많고 건강하며 좋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까지 유지하며 산다면 깨달음에 이른 사람 다음으로 이상적인 삶을 산다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심리학에서 돈은 행복 촉진제라기보다는 불안 완화제에 가깝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 그래서 돈이 없으면 불행하지만 역설적으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여지는 그다지 크지 않다. 예를 들어 마이클 노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갤럽의 조사 그리고 프린스턴대의 2010년 연구 등 다양한 결과를 종합해 보면 연소득 6만~8만달러 이하의 가정에 사는 사람들은 확연하게 불행하다. 하지만 이 소득을 넘어선다고 해서 행복이 증가하지 않는다.
–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릭학과 교수, 매일경제 2020. 1. 16

위 동영상도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들이 1930년대 하버드 대학교의 학생들과 당시 비슷한 나이였던 빈민 청년들을 70년 넘게 추적 연구해 보니 행복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건 사람들 사이의 관계였다고 한다. 단순히 주변에 사람들이 많거나 하는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가족이나 그에 준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경우 삶의 질이 더 높았다.

조훈현의 스승이었던 세고에켄사쿠는 카와바타야스나리와 각별했다. 카와바타는 그가 아끼던 제자 미시마유키오가 자살을 하자 몇 달 뒤 자신도 그렇게 죽었다. 조훈현이 스승 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카와바타도 그리 허무하게 세상을 등진 몇 달 뒤 세고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 프로는 안내견의 예를 들며 “주변에서는 안내견이 본능을 억누르고 인간을 위해 희생한다고 말하는데, 실제로는 파트너가 칭찬과 격려를 통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으면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며 “이처럼 매 순간 행복하고자 하는 본능에 충실한 덕에 기대수명도 동일 견종에 비해 6~24개월 길다”고 말했다. 그는 “안내견을 보며 여러 차례 반복되는 우호적 관계가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깨닫게 됐다”며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행복을 찾기보다 주변 사람과 관계나 활동 속에서 구체적인 즐거움을 찾아볼 것을 제안했다.
매일경제 2021.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