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빛나는 승리는 일어나 싸운 때 이루어진 것들이다

프랑스의 노동자들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여 살벌한 시위를 하고 있다. 세계은행이 조사한 나라별 1인당 국내총생산을 보면 그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40위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예상하듯이 우리 위에는 많은 유럽의 나라들이 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려면 약자들끼리 힘을 합해야 한다. 초식동물들은 단결하여 천적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킬 수 없지만 인간은 그럴 수 있다. 주로 아프리카에 사는 영양들 가운데 몸집이 작은 거젤gazelle들은 무리 속에서 뜬금없이 펄쩍펄쩍 뛰어오르는데 이걸 stotting이라 한다. stot는 껑충 뛰어오른다는 뜻이다.

The question of why prey animals stot has been investigated by evolutionary biologists including John Maynard Smith, C. D. Fitzgibbon, and Tim Caro; all of them conclude that the most likely explanation given the available evidence is that it is an honest signal to predators that the stotting animal would be difficult to catch.
wikipedia

강한 인간은 약한 인간들을 많이 부리려 하지만 포식자인 동물은 피식자 무리에서 늙거나 어리거나 병들어 약한 개체만을 취한다. 스토팅을 하는 거젤은 자신이 그런 개체가 아니라는 걸 천적에게 알리는 거라는 게 학자들의 생각이다. 오래 전 몽골을 다룬 ebs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양치기가 들판에 있는 굴을 멀리서 가리키며 저게 늑대굴이라고 했다. 그걸 알면서 왜 늑대를 죽이지 않냐고 pd가 물었다. 도태되어야 할 개체를 늑대가 잡아먹지 않으면 양떼에 병이 도질 수 있어서 목동은 일부러 늑대를 죽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초식동물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협동을 할 필요가 없다. 나만 아니면 된다. 그건 초식동물이 이기적이고 매몰차서 그런 게 아니라 애당초 천적은 자신들의 공동체 자체를 지배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에게는 인간과 같은 욕심이 없다.

제구실
명사
1.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나 책임.
2. 어린아이들이 으레 치르는 홍역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
– 표준국어대사전

유럽 여러 나라들의 많은 노동자들은 우리 노동자들에 비해 더 강하게 단결하여 치열하게 싸워 왔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노동자들이야 워낙에 유명하지만 독일이나 북유럽의 노동자들도 만만치 않다.

스웨덴에는 폭탄을 터뜨린 청년이 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아니라, 영국 노동자들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던 ‘아말테아(Amalthea)’라는 배를 폭파했다. 오늘날 스웨덴은 노사 간 큰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이지만, 20세기 초에는 날이면 날마다 노동자 파업이 일어났다. 신문에는 연일 기업의 파산과 실직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광산, 철공소, 설탕 공장, 건설업 등 여러 사업체에서 보고된 분쟁이 1908년 한 해에만 300건이 넘었다.
– 나승위, 경향신문 2020. 11. 20.

이들은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가 없는 다른 노동자들의 싸움에도 관대하다. 이거 역시 넓은 의미의 단결이다.

마침 내 옆자리에 앉은 한 중년 남성이 읽고 있던 신문을 덮으며 앞에 있는 일행과 대화를 나누었다. ‘파업하는 사람들 마음은 어떻겠냐’고 그가 물었고, 앞에 있는 사람은 ‘우리야 겨우 기다리는 것밖에 못해주니까’라고 답했다. 그 대화를 듣고 열차 안을 둘러보니 다급해 보이는 건 오로지 나뿐이었다. 열차는 1시간45분을 지연한 후에 출발했다.
– 최정애 전남대학교 교수, 경향신문 2022. 3. 5.

말이야 거창하지만 약자들의 연대는 취약하다. 무리에는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강자의 회유에 쉽게 넘어가는 가난한 영혼들도 물론 있다. 대체로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는 힘을 합쳐 거대한 악과 싸우는 능력이 유럽 사람들에 비해 부족하다. 유럽 사람들은 지금에야 잘 살지만 오래 전에는 서로 죽고 죽이고 왕이고 뭐고 목 자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인화 선생의 표현을 빌면 우리는 비교적 평온했던 중세를 보낸 민족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야 허구헌 날 외침을 받고 단결하여 물리친 내용이지만 적어도 유럽과 비교하면 그건 아니다.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는 ‘트럭 시위’를 진행한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직원들에게 민주노총이 노동조합 결성을 권유했지만, 스타벅스 트럭 시위 주최 측이 이를 거절했다.
경향신문 2021. 10. 9.

긴 사연이 어떻든 그렇게 단결하는 능력을 자의 반 타의 반 길러 온 유럽의 노동자들은 지금 우리보다 좋은 삶을 누리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은 2020년까지 global competitiveness report라는 걸 발간했다. 2020년 판에는 없는데 2018년에는 노동자의 권리p.339에 대한 조사도 하여 나라별 순위를 매겼다. 이때 우리나라는 108위를 차지했다. 국제노동조합연맹international trade union confederation은 노동자들의 권리가 얼마나 침해되는지 나라별로 조사하여 2022년 발표했다. 여섯 단계의 분류에서 우리나라는 끝에서 두 번째인 5등급에 속했는데 이 등급은 No guarantee of rights다. 참고로 trade union은 무역연합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에서 trade는 ‘~업’이라는 뜻이며 예를 들어 building trade는 ‘건물 매매’라는 뜻이 아니고 ‘건설업’이라는 의미다.

“당분간 우리는 모든 싸움에서 지기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세희, 한겨레 2023.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