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이 필요한가

올바른 우리말의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이 규정한다. 이 사전은 국립국어원이라는 정부기관이 만든다. 이 기관은 어문 규범이라는 것도 만들어 문법의 바른 사용도 규정한다. 고로 우리말을 옳게 쓰는지 여부는 정부가 결정한다.

영어의 경우에는 다르다. 같은 단어라도 사전에 따라 표기나 뜻이 다른 경우들이 흔하다. 예를 들어 주식 따위를 같은 날에 사서 팔거나 그 반대로 하는 행위를 일컬어 윅셔너리는 daytrade라는 동사로 정하고 daytrading 역시 동사로서 daytrade의 현재 분사라고 한다. 그러나 캠브릳지 사전은 daytrade를 동사로 올리지 않은 채 day trading이라는, 두 단어를 띄어 쓴 복합어만 명사로 규정하고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은 위와 같은 단어를 쓸 때 어떤 게 맞고 틀리는지 따지지 않는다. 둘 다 써도 되며 신문에도 그렇게 나온다.

예를 들어 위 행위를 day trade와 daytrade 가운데 어느 것으로 규정할 것인지 daytrading을 명사와, 동사의 현재 분사 중 어떤 거로 볼 것인지의 판단은 주관적이다. 논리적으로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애매한 판단을 영어 이용자들은 유보하고 우리는 정부가 나서서 한다. 어떤 게 좋을까? 우리처럼 하면 규칙적인 이용은 가능하겠지만 분명하지 않은 많은 상황들에서 이용자는 사전을 찾아봐야 한다. 이런 수고를 게을리하면 표준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의사 소통에 특별한 지장이 없는데도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영어의 경우가 더 실용적이다. 저렇게 구분하지 않고 써도 언어의 가치에 구체적인 위해가 발생하거나 생각을 주고 받는 데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이 모호한 주관적 대상들에 과감하게 개입하는 것도 문제지만 객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일관되지 않게 규정하고 있는 경우들이 흔한 건 더 큰 문제다. 예를 들어 ‘찾아보다’는 하나의 단어로 올라와 있지만 ‘먹어 보다’는 그렇지 않다. ‘일주일’은 표준어이고 ‘이주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는 말을 표준어가 아니라고 고집부리는 문제도 심각하다. 한자 李의 훈은 ‘오얏’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은 자두를 뜻하는 이 단어를 표준어로 삼지 않고 있다. ‘미끌거리다’와 생선의 간을 뜻하는 ‘애’는 모두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말들이다. 이들 단어는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는 우리의 표준어에 해당하는 문화어로 올라와 있다.

공동체에서 통용되는 외래어를 너무 늦게 인정하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마땅히 우리말로 바꿔 말할 수 없는 ‘스타트업’은 뉴스나 기사에도 그대로 이용되지만 아직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는 단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표준국어대사전을 없애자는 주장들이 나온다.

국가가 성문화된 철자법(맞춤법)을 제정하고, 표준어를 선정하고(=비표준어를 지정하고), 사전 편찬마저 독점적으로 차지한 상황은 세계적으로 매우 이례적이고 괴이하다.
– 김진해 경희대학교 교수, 한겨레 2022. 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