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사각 지대에 놓인 경계선 지능인들

우리 공동체에는 장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장애인 복지법이란 게 있다.

제1조 (목적) 이 법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보장을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책임을 명백히 하고, 장애발생 예방과 장애인의 의료ㆍ교육ㆍ직업재활ㆍ생활환경개선 등에 관한 사업을 정하여 장애인복지대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며, 장애인의 자립생활ㆍ보호 및 수당지급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장애인의 생활안정에 기여하는 등 장애인의 복지와 사회활동 참여증진을 통하여 사회통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 장애인 복지법

당연한 말이지만 이 법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장애인들이다. 그런데 지적 장애의 경우 일도양단으로 장애냐 아니냐를 결정하기 어려운 애매한 경계에 놓인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가 된다. 이들을 경계선 지능인들이라고 하며 대개 지능 지수가 70대인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경계선 지능인들은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혼란스럽다. 멀쩡한 거 같은데 엉뚱한 짓들을 한다. 저 사람들이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시키면 앞에서는 하다가도 몇 시간 뒤에는 내팽개친다. 정상 지능의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행동이 향후 자신들의 평가에 나쁜 영향을 줄 거라는 걸 자연스럽게 의식하기 때문에 조심하거나 최소한 눈치라도 보면서 하게 마련이지만 경계선 지능인들은 그렇지 않다. 같은 질문을 하면 30분 간격으로 다른 대답을 하는가 하면 거짓말도 스스럼 없이 한다. 근데 또 뭘 시키면 대들거나 토달지 않고 눈 앞에서는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한다. 그야말로 이렇다 저렇다 판단을 하기 어려운 경계에 놓인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영위해 나갈 수 없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에도 경계선 지능인들이 있다. 형제인 이들은 높은 강도의 육체 노동을 하면서도 거의 매일 점심 식사를 굶는다. 직장에서는 5천 원을 받고 직원들에게 점심을 팔고 있다. 사정을 알아보니 부모가 이들의 임금을 취하고 대신 각자에게 한 달에 30만 원씩을 쓰라고 준다 한다. 물론 이 말도 그 사람들을 통해 들은 거라 다시 물으면 또 딴 소리를 할 가능성이 있긴 하다. 어쨌든 이들은 직장에서 힘내서 일하라고 그나마 공짜로 주는 탄산음료로 허기를 때우며 하루를 버틴다. 서울에서 성인이 출퇴근하고 통신비 내며 식사 사 먹으면서 30만 원으로 살 수는 없다. 이렇게 살려면 회사만 오가고 먹기만 하고 정말 딱 숨만 쉬어야 한다. 사람들도 만나고 결혼도 해야 하는 청년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다. 그러니 딴 데 써야 할 일이 생기면 굶어서 충당하는 거다.

이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자신들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학대를 받는 많은 사람들은 가해자에게 삶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가해자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걸 두려워한다. 이게 학대가 지속되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이다. 이들 경계선 지능인은 장애인 복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위 사례가 학대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차치하고 최소한 위 부모들이 장애인 복지법을 위반한 건 아니다. 우리 민법은 성년 후견 제도를 마련하여 위와 같이 후견이 필요한 사람들을 정하고 있지만 이는 이들의 복지를 위한 게 아니라 이들이 하는 거래가 초래하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한 거다. 저 친구들에게 도움될 게 없다.

내가 보고하여 회사도 저들의 처지를 알고 있다. 배를 곯으며 직원들이 노동을 하고 학대자들이 그 대가를 취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학대를 방조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내가 문제를 키우면 회사는 저들에게 사직을 권고할 거다. 저 사람들 식사라도 할 수 있게 식대를 제하고 임금을 지급하는 건 원칙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43조 (임금 지급) ① 임금은 통화(通貨)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금의 일부를 공제하거나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다.
– 근로기준법

법으로는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규율할 수 없다. 기술적인 한계는 피할 수 없다. 그 빈 자리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선의와 의무감으로 메워야 한다. 하지만 점심 시간마다 휴게실에 앉아 멍하니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저 친구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