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회의 호는 압구인가 압구정인가

‘압구정狎鷗亭‘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한명회의 호라고 나온다. 하지만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저 이름은 정자의 이름이다. 집의 이름이 흔히 사람의 호로 쓰이듯 정자의 이름도 사람의 호로 할 수도 있을까. 있다. 성종실록에 보면 한명회를 가리켜 압구정이라 한 기록이 나온다.

狎은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한자로 ‘익숙하다’는 뜻이다. 鷗는 ‘물새’라는 의미다. 합하여 狎鷗란 ‘물새와 허물없이 지낸다’는 말이다. 물새는 육지 새와 달리 제가 알아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지라 사람에 길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물새와 가까이 지낼 정도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거리낌이 없다는 뜻이다.

이 이름에 대해 잘 모르고 한명회가 지었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니다. 중국 명나라에서 조선에 사신으로 왔고 학사라는 벼슬을 한 예겸이 한명회의 부탁을 받아 고사에서 빌어 지어 준 거다. 예겸은 자신이 사신으로 왔다가 직접 그곳을 방문했던 경험을 記로 지으며 열자의 황제 편에 나오는 망기해옹忘機海翁의 이야기에서 그 이름을 가져온다 했다.

정리해 보면 예겸이 한명회에게 압구라는 정자의 이름을 지어 줬고 한명회는 그게 썩 마음에 들었는지 거기에 亭을 더 붙여서 자신의 호로 했다. 예겸이 한명회에게 호를 지어 준 건 아니다.

1. 인명 ‘한명회’의 호.
압구정, 표준국어대사전

墨二封及中朝文士所和狎鷗亭詩軸
중국 조정의 문사가 압구정과 화답한 시축을 올리고
성종실록 56권, 성종 6년 6월 5일 임오 6번째 기사

臣昔奉使入朝 欲與學士倪謙接話 遂請曰 漢江邊作小一亭 願賜嘉名 乃名之曰狎鷗 又作記以與之
신이 옛날에 사명을 받들고 중국 조정에 들어갔을 때에 학사 예겸과 더불어 접화하고자 하여 드디어 청하기를, ‘한강가에 조그마한 정자 하나를 지었으니, 원컨대 아름다운 이름을 내려 주십시오.’ 했더니, 이에 압구라고 이름하고 또 기를 지어 주었습니다.
성종실록 118권, 성종 11년 6월 7일 병진 2번째 기사

그 후에 학사學士, 예부우시랑禮部右侍郎, 남경예부상서南京禮部尚書 등을 역임했다.
예겸, 중국역대인물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