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와 신덕왕후의 사랑

살다 보면 자신의 몸뚱이를 도구로 삼아 살아가는 여자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날 리 없다. 당연히 남자 일반에 대해 왜곡된 의식을 갖게 된다. 사랑 받지 못한 사람이 사랑하기는 어렵다.

이성계는 조선을 세우기 전 청주 한 씨와 결혼을 했는데 그녀는 그가 왕이 되기 전에 죽었다. 그는 한 씨와 결혼을 한 상태에서 곡산 강 씨와도 중혼을 했다. 한 씨는 정비이고 강 씨는 계비임금이 다시 장가를 가서 맞은 아내이지만 한 씨가 일찍 죽어 강 씨가 조선의 첫 왕비가 되었다. 존호왕이나 왕비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올리던 칭호는 신덕왕후다.

신덕왕후는 마흔 살에 죽었다. 지금도 그 나이면 여자로서는 한물 간 상태인데 당시에는 오죽했겠나. 하지만 이성계는 그녀를 무척 사랑했다. 그녀가 묻힌 곳이 정릉인데 이곳에서 아침 저녁으로 재齋 성대한 불공이나 죽은 이를 천도(薦度)하는 법회를 올렸다. 이성계는 정릉으로부터 경쇠놋으로 주발과 같이 만들어, 복판에 구멍을 뚫고 자루를 달아 노루 뿔 따위로 쳐 소리를 내는 불전 기구 소리를 들은 뒤에야 수라를 들었다 한다. 애당초 정릉은 지금 위치가 아니라 경복궁과 가깝게 4대문 안에 있었다. 이성계가 그녀의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왕세자, 왕세손, 왕후, 비(妃), 빈(嬪), 부마 등을 봉작(封爵)하던 일한 뒤 한 씨의 아들이었던 방원이 앙심을 품고 왕이 되어 묘를 멀리 옮겨 버렸다.

지나던 총각이 물을 청하니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주었다는 얘기가 바로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