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를 없애자는 주장 –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공동체의 공교육 시스템이 시험에 들었다. 나쁜 학부모들 때문에 초등학교 교사가 교실에서 자살을 했다고 한다. 수준 낮은 학생들 때문에 선생 노릇을 하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다른 시각에서는 제도적으로 학생들이 교사들에게 싸가지 없게 행동하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한다. 모두 맞는 말들이다. 세상 일은 이렇게 여러 문제들이 공존하며 리듬에 따라 이 문제가 터졌다가 저 문제가 불거졌다가 하게 마련이다. 문제를 고쳐 나가면 시스템이 된다.

겉으로 보기에 문제는 학부모들에게 있다. 그들이 옳지 않은 처신을 하고 살았으니 새끼들이 보고 배운 거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지금의 학부모들이 겪었던 공교육 과정에서의 피해 의식이 있다. 나도 그렇다.

중학교 수업이 시작되었다. 무서운 선생이었어서 학생들은 트집 잡히지 않으려고 그가 오기 전에 모두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화난 얼굴로 교실에 들었다. 그리고 말 없이 엄지와 검지로 조그만 분필 조각을 들어 올렸다. 교실에 들어오면서 교실 앞 복도에서 주운 거라 했다. 모두 고개를 숙이라고 했다. 그리고 모든 반 학생들의 목덜미를 지휘봉으로 때렸다. 그러곤 고개를 들라 했다. 들어왔을 때와는 달리 무척 흐뭇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한번 스트레스 해소하고~”.

이렇게 교육 받은 우리는 자식들의 선생들에 대해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정우성은 그런 학교를 정글이라고 표현했다.

따로 큰 돈을 들여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시키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공교육 담당자들의 한가한 사고와 행태는 또 다른 측면에서 학부모들을 편치 않게 한다.

큰애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두자릿수 뺄셈을 배울 때 자원봉사 당번이 돼 교실을 찾았다. 보조교사까지 두 선생님이 가르치는데 유독 한 아이가 셈을 못했다. 일주일 뒤에 가니 그 학생 옆에 다른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교육청에서 나온 개인교사였다. 그 아이는 무난히 3학년에 올라갔다. 자폐스펙트럼 학생 담당까지, 학생 15명인 그 반에는 교사 4명이 있었다.
– 안희경, 경향신문 2023. 3. 17.

물론 우리나라의 얘기는 아니다. 미국의 얘기다.

금융 시장에는 휘발성volatil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느 방향으로 상품의 가격이 과격하게 움직이면 되돌리는 반작용도 거칠어지는 추세를 개념화한 거다. 가격이 안정된 상태에 있다가 변동성이 커져서 한쪽으로 쭉 뻗어나가면 그에 못지 않게 급격한 되돌림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때 그 되돌림은 애당초 얌전히 머물러 있던 자리를 훌쩍 지나쳐 다시 반대쪽 멀리까지 가 버린다. 이러니 linear한 관념 속의 안정된 수준을 중심으로 커다란 진폭을 그리는 진자 운동이 추세를 그리며 계속된다. 그 에너지가 사라질 때까지.

시간과 인내와 동요하지 않는 적당한 관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