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때로 주변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한 달 조금 채우지 못하고 회사에 나가 하던 일을 어제 그만뒀다. 트래이드와 컴퓨터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하던 사람이라 다른 일들은 틈틈이 해 왔다. 많은 일들을 해 왔고 그만큼 관뒀다. 하지만 이번만큼 내상이 큰 적은 없었다.

사람들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마음의 모양도 제각각이게 마련이다. 나의 의식은 본디 관계 지향적이지 않으니 조직 친화적이지도 않은 게 당연하다. 다행히 가족 바깥의 공동체에서는 책임감이 강해서 주어진 일은 성실하게 했다. 조직을 떠나야 할 땐 더 있어 주면 안 되겠냐는 부탁을 흔히 들었고 언제라도 원할 땐 다시 와 달라는 분수에 넘치는 말도 두세 번은 받았다.

퇴사를 할 땐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동기를 제공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오래전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넌 따귀 한 대를 맞았다고 사람을 죽이려 드냐.” 최대한 감정을 누르고 새 달이 되어 후임자가 정해질 때까지는 출근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면서도 성질을 이기지 못한 채 언성을 높히고 짐을 싸 나왔다.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차마 변명을 할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이게 그렇게까지 나올 일이냐 하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해 하면서 떠나는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 나는 하루를 꼬박 나를 되돌아봤다. 반성을 거듭하며 나는 0.1% 정도는 더 나은 인간이 된 거 같다. 성장은 성찰을 전제로 한다. 살다 보면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는 자신을 보며 놀랄 때가 있다. 비록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이를 자각하지 못하면 그건 더 자란 게 아니다. 따라서 성장은 오롯이 자신의 노력과 깨달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부족한 나를 직면하며 나는 성장했지만 내가 남긴 의식의 오물들은 고스란히 남은 사람들이 몫이 됐다. 그게 미안하고 견디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