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법의 불항쟁 답변, no contest, nolo contendere

영미형사법에는 우리 법에 없는 불항쟁 답변이라는 게 있다. 라틴latin 자체가 라틴의 말이라는 뜻이므로 라틴어라는 번역은 틀림으로 놀로 컨텐더리라고 하는데 nolo는 ‘원하지 않는다’라는 뜻이고 contend는 ‘다툰다’는 의미다. contest도 같은 말이다. 공소 사실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무죄의 항변은 하지 않고 검찰과 법원의 인정에 따라 처벌을 받겠다는 답변이다. 말장난 같지만 법률 효과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불항쟁 답변을 설명하기 전에 plea bargain을 알아야 한다. 형사법정에서 법원은 피고인에게 공소 사실을 인정하냐고 묻는다. 이에 피고인이 답하는 게 plea다. answer 아니다. 흔히 동사 enter와 함께 enter the plea라고 표현한다. 플리 바긴은 이러한 답변 거래이며 흔히 유죄 인정이나 양형 거래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피고인은 플리로 유죄와 무죄를 인정하거나 주장할 수 있다. 여기에 예외적으로 더 가능한 게 no contest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유죄 인정이나 무죄 항변을 할 때와 어떻게 다른가를 보면 된다.

유죄 인정은 그 결과가 민사법정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민사 원고의 입증 책임이 가벼워진다. 하지만 불항쟁 답변을 하면 형사법정에서의 유죄 판결은 민사법정에 효력을 미치지 않고 민사법정에서 원고와 피고는 서로 원점에서 다시 다투게 된다. 피고가 당연히 유리하다.

그렇다면 왜 저렇게 피고를 배려하는 걸까? 검찰이 공소 사실을 깔끔하게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항쟁 답변은 대개의 경우 플리 바긴을 전제로 한다. 검찰은 무죄 판결의 위험을 피하고 피고인은 검찰이 애당초 구형하려는 형량보다 낮은 형량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불항쟁 답변은 좀 더 깊게 들어가면 형사 책임 부정의 문제에 이르게 된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에는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이라는 3단계의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불항쟁 답변을 하는 경우 위법성까지는 인정을 하지만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단 이 주장이 책임조각사유의 그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책임이 아예 없다면 무죄이기 때문이다. 불항쟁 답변은 사실상 유죄 인정이지 무죄 항변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무죄 항변을 하는 경우와는 어떻게 다를까? 피고인의 독박 위험이 커진다. 법원이 무죄를 판결한다면 제일 좋은 결과이겠지만 유죄로 인정한다면 플리 바긴을 할 때보다 당연히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며 플리 바긴에 실패하면 검찰은 구형량도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