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며 죽기
고통도 공포도 등을 돌리면 괴물처럼 커진다. 고통도 공포도 직시하면 사그러든다. 고통과 공포를 있는 그대로 보는 건 수행의 전부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는 듀보스라는 괴팍한 할망구의 죽음이 그려진다. 주인공 가족의 이웃인데 변호사인 주인공의 아버지가 흑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물론 초딩 애들 둘한테도 온갖 저주를 퍼붓는다. 그런 그녀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안 아버지무척 선한 사람이다는 아들로 하여금 그 할머니 댁에 가서 매일 한 시간씩 책을 읽어 드리게 한다. 한 달 동안. 듀보스 할머니는 읽어 주는 책은 제대로 듣지도 않으면서 누워서 경련하고 침 흘리며 꼬마에게도 온갖 구박만 늘어 놓는다.
한 달이 지나 꼬마가 더 이상은 할머니에게 가서 책을 읽어 드리지 않아도 되게 된 며칠 뒤 그녀는 죽는다. 임종을 하고 밤 늦게 돌아온 아버지에게 아들이 묻는다.
“Did she die free?” asked Jem.
“As the mountain air,” said Atticus. “She was conscious to the last, almost. Conscious,” he smiled, “and cantankerous. …
I wanted you to see something about her-I wanted you to see what real courage is, instead of getting the idea that courage is a man with a gun in his hand. It’s when you know you’re licked before you begin but you begin anyway and you see it through no matter what. You rarely win, but sometimes you do. Mrs. Dubose won, all ninety-eight pounds of her. According to her views, she died beholden to nothing and nobody. She was the bravest person I ever knew.”“자유롭게 돌아가셨나요?” 젬이 물었다.
to kill a mockingbird, harper lee
“산 위의 공기처럼 그렇게 가셨다. 맑은 정신으로 떠나셨어. 끝까지 고약한 말씀을 남기시긴 했지만.” 아버지께서 미소를 지으며 답하셨다. …
“난 니가 진정한 용기란 걸 보기 바랬다. 용기란 손에 총을 쥐고 있다고 생기는 게 아니거든.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크게 한 방을 맞았어도 어쨌든 계속 헤쳐 나가는 게 용기란다. 대부분의 경우엔 또 굴복하겠지만 그래도 몇 번은 이길 때도 있게 마련이지. 듀보스 할머닌 50kg도 되지 않는 몸으로도 이겨 내셨. 아무것에도 누구한테도 의지하시지 않고 그렇게 가셨다. 살면서 뵌 분들 가운데 제일 용감한 분이셨어.”
듀보스 할머니는 늙고 병들어 의사로부터 아편을 처방 받아 살다가 중독되었는데 죽기 얼마 전부터 스스로 투약을 중단한 상태였다. 호스피스 일을 하는 분의 얘기를 들어 보면 진통제를 많이 투약받은 사람일수록 고통이 길고 죽음이 깔끔하지 못하다고 한다. 듀보스 할머니는 추한 모습일지언정 고통을 있는 그대로 겪고 보고 그렇게 갔다. 그걸 하퍼 리 여사께선 주인공의 입을 빌려 용기라 표현하셨다.
우기에 들어 부처는 제자들로 하여금 각자 연고지를 찾아 안거에 들라 하고 자신도 안거에 들었다.
안거 중에 부처께서 병에 걸리시어 심하게 앓으셨다. 고통이 너무 극심하여 돌아가실 것 같았다. 그러나 부처께서는 마음을 챙기시고 분명하게 깨어 계시면서 불평하시지 않고 모든 고통을 견뎌 내셨다.
디가 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2.23.
유튜브 채널 ‘목탁소리’를 운영하는 법상 스님은 모든 괴로움은 반드시 해결될 수 있으며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허상이라 했다. 틀린 이해다. 고통을 해결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예수도 부처도 고통 속에서 갔다. 괴로움은 허상이 아니다. 괴로움은 모든 생명이 늙고 아프고 죽게 되는 당위로부터 비롯되는 실존이며 수행의 전제이자 재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