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블라인드 싸이드와 앵무새 죽이기
샌드러 블록이 주연한 영화 the blind side의 배경은 미국의 미시시피이고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앨러배머에서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 남부에 있는 인접한 주州들이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사람을 노예로 삼지 못하게 하겠다는 북부 사람들에 맞서 전쟁을 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지역은 공화당의 강세 지역이다. 인종 차별이 심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위의 영화나 소설 모두 부자 백인이 가난한 흑인을 보살피는 얘기다. 겉으로 보면 뻔한 거 같지만 잘 들여다 보면 통속적인 얘기들과는 결이 조금 다른 걸 알 수 있다. 주인공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시선은 불쌍히 여겨 베푼다는 시혜적 그것이 아니라 청교도적이고 엄격한 의무감에 가깝다. 뿌듯한 자기 만족을 즐기는 게 아니라 그다지 내키지 않음에도 그냥 해야 하는 거니까 한다는 드라이한 모습이다.
소설에서 주인공 가족의 저녁 식사 자리에 동네 가난한 집안의 아이가 같이하게 된다. 얘는 뜬금없이 설탕 시럽을 달라고 하더니 한이 맺혔던 듯 이 음식 저 음식 모두에 들이붓기 시작하는데 주인공 꼬마는 그걸 보고 지적질을 하여 친구가 고개를 떨구게 한다.
It was then that Calpurnia requested my presence in the kitchen. She was furious, and when she was furious Calpurnia’s grammar became erratic. When in tranquility, her grammar was as good as anybody’s in Maycomb. Atticus said Calpurnia had more education than most colored folks. When she squinted down at me the tiny lines around her eyes deepened. “There’s some folks who don’t eat like us,” she whispered fiercely, “but you ain’t called on to contradict ‘em at the table when they don’t. That boy’s yo’ comp’ny and if he wants to eat up the table cloth you let him, you hear?”
그때였다. 캘퍼니어가 나를 부엌으로 불렀다. 딱 봐도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다. 아줌마는 평상시엔 우리 가족들처럼 말을 바르게 잘 했지만 화가 나면 문법이 막 틀리게 말했다. 애티커스는 아줌마가 다른 흑인들보다 많이 배운 분이라고 했다. 나를 쬐려 보니 눈가에 주름이 더 깊어졌다.
to kill a mockingbird, harper lee
“세상에는 꼭 우리처럼 먹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매서웠다. “그렇다고 면전에서 그렇게 면박을 주면 못써. 니가 친구라고 같이 저녁 먹자고 데리고 온 거잖아. 그랬으면 쟤가 식탁보를 먹겠다고 해도 그냥 모른 척해. 알아들어?”
캘퍼니어는 흑인 식모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집안에서 어머니 역할도 하는데 보다시피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따끔하게 아이에게 혼을 낸다. 애티커스는 아버진데 특이하게 이 작품에서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이름을 부른다.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아버지가 그렇게 부르라고 시킨다. 참고로 이렇게 부르는 거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흔한 경우가 아니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