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못할 미국
사정 변경의 원칙
약속이란 당사자들이 합의를 한 때의 상황이 심하게 달라지면 그 의미를 잃는다. 현대법의 일치된 입장도 현저한 상황의 변경으로 인한 법률 효과의 변경을 인정하며 우리 법도 마찬가지다.
제218조 (수도 등 시설권) ① 토지소유자는 타인의 토지를 통과하지 아니하면 필요한 수도, 소수관, 까스관, 전선 등을 시설할 수 없거나 과다한 비용을 요하는 경우에는 타인의 토지를 통과하여 이를 시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손해가 가장 적은 장소와 방법을 선택하여 이를 시설할 것이며 타토지의 소유자의 요청에 의하여 손해를 보상하여야 한다.
② 전항에 의한 시설을 한 후 사정의 변경이 있는 때에는 타토지의 소유자는 그 시설의 변경을 청구할 수 있다. 시설변경의 비용은 토지소유자가 부담한다.
– 민법
국내법과 달리 강제력이 없다시피 한 국제법이나 국제 관계에서는 약속의 구속력이 더 약하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와 달리 국가들 사이의 그것은 더욱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이며 민주주의 체제의 나라들에서는 약속 이행의 주체인 정부가 자주 바뀌기까지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한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엎었다. 미국이라고 다를 거 없으며 오히려 더 심하다.
조미수호통상조약과 태프트-카츠라 협정
1882년 조선과 미국은 수호통상조약Treaty of Peace, Amity, Commerce and Navigation을 맺었다. 이 조약의 제1조는 당사국들 가운데 하나가 다른 나라로부터 공정하지 않고 강압적인 대우를 받으면 다른 당사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재에 힘쓸 것을 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1905년 은밀하게 필리핀은 미국이 먹고 대한제국은 일본이 먹자는 합의를 했는다. 이때 미국의 전쟁부United States Secretary of War 장관이었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와 일본의 총리대신이었던 카츠라타로桂太郞가 각 나라를 대리하여 이 협정을 태프트-카츠라 협정이라 한다. 미국은 이 협정으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깼고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북미 제네바 합의
1990년대 초 북한의 핵 무기 개발이 위성 사진으로 드러났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일반 사찰은 받아들였지만 특별사찰은 거부했다. 1994년 미국은 북한과 협상을 하여 핵 시설을 동결하는 대가로 중유를 제공하고 경수로를 지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미국 정부가 바뀌며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제네바 합의가 이뤄진 당시는 물론이고 2천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의 핵 무기 개발은 장난감 수준이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여전히 약속 이행을 거부했고 지금 이 지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