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에만 이익
인간이 완벽할 수 없는데 인간들로 구성된 공동체가 그러할 리 없다. 지구에 있는 많은 나라들 중에는 우리 의식의 수준으로 보기에 미개하기 짝이 없는 집단들이 많다. 내 자식은 커녕 내 몸과 마음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데 남의 나라를 우리 욕심에 맞춰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이를 내 맘에 맞추려는 생각은 여러 집착들 가운데에서도 무척 큰 이고ego다. 이런 욕심이 나, 상대방 그리고 이들 사이의 관계 모두에 잠깐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굳이 따지면 러시아는 우방
불과 수십 년 전까지 러시아는 우리의 적국이었다. 사업 관계에서나 국제 사회에서나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현재와 가까운 미래의 필요만 있을 뿐이다. 2021년 우리나라에 요소수를 수출하던 중국의 형편이 나빠져 우리에게 요소수가 부족하게 되어 큰 혼란을 겪었다. 이때 러시아는 우리에게 요소수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2019년 일본이 자국의 업체들로 하여금 반도체 제작에 꼭 필요한 소재들을 우리 공동체에 수출하지 못하게 했을 때에도 러시아는 불화수소 등의 공급 의사를 먼저 밝혀 왔다. 문재인과 푸틴은 다섯 번이나 정상 회담을 했다. 한국전쟁 때 커다란 축이었던 소련의 후신後身인 러시아와 가까이 지내는 건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유리하다.
미국의 책임
세상의 중요한 일들은 한두 가지 원인으로 인해 생기지 않는다. 전쟁은 우리가 겪는 가장 큰 일인 셈이니 그 책임을 단순하게 누군가에게 묻기는 어렵다.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만큼 잘못의 주체를 가려 본다면 그건 미국이다.
1990년 두 개의 독일은 하나로 통일되었다. 통일 전 동독은 냉전의 지리적 경계였다. 이 통일은 서독의 노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게 가능했다면 45년 동안 갈라져 살아왔을 리도 없다. 통일은 당시 급격한 변화를 겪던 소련의 도움 내지는 양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미국과 서독은 동독의 국경 너머에 있는 나라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시키지 않겠다고 소련과 약속했다. 그 약속은 오래 전 깨져 폴랜드를 받아 줬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까지 가입을 신청한 상태다.
이 깨진 약속에 대해 원래 구속력이 있었네 없었네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강제할 수 없는 법은 타오르지 않는 불꽃과 같다는 유명한 법언法諺이 있다. 국제 관계에서 강제력이라는 건 애당초 어떠한 방식의 약속에도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전쟁을 하는 거다. 소련이 무너지고 소련 연방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던 핵무기들의 처리가 문제되었다. 소련이 무너지고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1994년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핵무기들을 러시아에게 주며 그 대가로 미국 등으로부터 자신들의 안위를 약속받았다. 이게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다. 우크라이나처럼 통제가 애매한 나라가 핵무기를 잔뜩 가지고 있는 건 서방의 입장에서도 불안한 일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전쟁을 하며 이 약속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미국이 소련에게 한 나토 확장 억제 약속처럼 구속력 없기는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는 약속을 어겨 전쟁에 불을 당긴 미국에게 전쟁을 막을 약속은 지키라고 하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
소련의 만행,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략
1930년대 소련은 우크라이나 지역을 약탈하여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을 굶어 죽게 했다. 기근이 어찌나 심했던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이러니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러시아 사람들에게 치를 떠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고통을 겪은 시대의 일이니 그냥 오래 전 일이라고 잊을 수도 없는 기억이다. 소련이 러시아가 된 뒤에도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땅이던 크림반도를 침략하여 빼앗은 건 멀지도 않은 2014년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도 역시 미국의 역할이 있었다. 코소보의 독립에 관여하여 러시아를 자극했다.
미국이 얻는 것
미국이 나토 확장을 한 거부터가 국제적인 평화 따위의 담론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순전히 자신들의 탐욕을 위한 거였다. 1996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수세에 몰렸던 클린턴은 재선을 앞두고 스윙 보터였던 폴랜드계 미국인들의 표가 필요했다. 클린턴은 폴랜드를 나토에 가입시키겠다고 했다. 지난해 미국의 무기 수출은 2021년에 비해 약 49% 늘었다. 우크라이나에 수출한 게 아니다. 유럽과 아시아에 판 거다. 전쟁을 통한 무기 마케팅의 결과다.
한심한 우크라이나
미국을 믿고 러시아와 전쟁을 하기로 결정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코미디 드라마에서 대통령 역할을 맡아 인기를 끌었던 배우였다. 미국에서도 영화배우를 했던 레이건이 대통령을 하기도 했지만 이 사람은 영화배우를 그만두고 15년 정도 충분히 정치 경력을 검증 받았다. 대통령이 된 영화배우가 아니라 한때 영화배우도 했던 대통령이었다. 2002년 우리 공동체에서도 월드컵 열풍에 취해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었던 정몽준을 대통령으로 뽑자던 사람들이 있었다. 다행히 되지는 않았는데 그런 사람이 되기도 하는 나라가 정말 있다. 이런 나라에서는 전쟁 중에도 고위 공무원들이 부정부패를 일삼고 대통령 내외는 패션 잡지 화보를 찍고 전선에서 먼 수도의 사람들은 파티를 열고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
정의라는 망상
누군가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강자의 횡포에 맞서는 약자를 도와 정의를 구현하는 거라 이해한다면 이는 탐욕의 선동에 넘어간 것일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런 깡패짓을 평소에도 일삼는 나라는 러시아만 있는 게 아니다. 죽이고 빼앗고 하는 거로 보면 미국과 아주 친한 이스라엘도 러시아 못지 않다. 국제 앰네스티도 팰러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깡패 행위를 강하게 규탄하고 있지만 정의란 워낙에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거다.
피해는 우리 몫
엉뚱한 전쟁의 계산서가 황당한 난방비 고지서로 우리에게 청구됐다. 오늘 2023. 1. 28. 한겨레에는 ‘구정은의 현실 지구’라는 연재 칼럼으로 ‘세계 경제는 더 이상 러시아가 필요하지 않다’라는 글이 전면에 실렸다. 칼럼니스트 소개로는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라고 되어 있다. 이 신문의 칼럼니스트들 수준에 대해선 이미 지적한 적이 있는데 역시나 딱 그 수준이다. 러시아가 천연 개스를 수출하지 않아 유럽이 혹독한 겨울을 날 거로 예상했지만 잘 버텨 가고 있다는 취지다. 국제적으로 지구의 현실에 대해서만 관찰을 해서 그런지 정작 우리 공동체의 문제는 보질 못하는 모양이다.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던 연료를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된 유럽은 외계인으로부터 난방 연료를 받아다 쓰는 게 아니라면 결국 우리가 써야 할 걸 가져다 쓴 거다. 그 과정에서 가격이 오른 건 당연하다. 역시 그 와중에 노난 건 미국이다. 유럽으로 수출하는 미국의 석유가 급증했다.
다행히 이 칼럼은 인터넷판으로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